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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잠수함의 지휘실에서는 왜 붉은 등을 켤까?


주제에 걸맞는 노래...




아무래도 사일런트 헌터의 항해일지도 다시 작성을 시작해나가야할 것 같고, 다시 시작하기 전에 소소한 썰을 조금 풉시다.
아마 대부분이 한번쯤은 궁금했을테고, 또 그에관한 명확한 답도 얻지 못했을 그런 썰말입니다.(저 혼자만의 망상은 아니겠죠?)
(보는 사람이.....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내 블로그에는 사람이 없잖아? 안될꺼야 아마...)



붉은 10월이라던지, 특전유보트, 크림슨타이드, U-571 등등 조금 알려졌다 싶은 잠수함 영화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씬이
고요한 바다속에서, 붉은 등을 켜 온통 시뻘건 마당에 음탐병은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모든 대원들이 숨을 죽이고 식은땀을 흘리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능동소나의 핑잉(Pinging)소리, 자함을 향해 발사되는 어뢰, 급격히 회피기동을 하고, 기만체를 사출하도록 명령하는 함장......
(아 물론 2차세계대전에는 잠수함간의 교전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므로 어뢰가 아니라 구축함의 폭뢰를 두려워했었겠죠. 물론 어뢰나 폭뢰나 무서운건 매한가지일겁니다)
(더러운 귀축영미의 헷지호그는 밸붕이니까 제외하도록 합시다. 요 녀석은 꽤나 최근까지도 필리핀 해군에서 현역이였다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에서도 운용했고...)


이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해준건, 머릿속까지 시뻘겋게(빨갱이) 물들이는 붉은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 말이죠. 
(사진은 전쟁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특전 유보트입니다. 독일어로는 Das Boot라고 하는데,
한국어 제목이 약간 초월번역된 감이 없잖아있죠...가 아니라 대놓고 뜻을 바꿔버렷....)

그럼 왜 붉은 등을 킬까요? 

기본적으로는 눈이 더 빨리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서입니다. 
2차세계대전때만 해도 잠수함이 잠수했을때 유효한 외부 관측 수단이 사실상 잠망경뿐이였습니다. (청음기를 제외하면요)
그런데 지휘실을 밝게 유지하면 바깥이 어두울때, 잠망경으로 관측하려고 하면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30분에서 45분 가량이 걸립니다. 그에 반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에서 암적응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그러니까 눈부심이 사라지기까지는 고작 2분밖에 안걸리죠 ) 
(사진은 저조도에서 우리눈의 망막세포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광도,intensity,에 대한 역치값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리 눈을 어둠에 적응시키고자 붉은 등을 켜놓습니다.






......라고 하면 여기까지는 대부분 다 아시는 내용일테고, 조금더 핵심을 찔러보죠. 



그럼 그 많고 많은 색깔, 그러니까 빨주노초파남보(외 수많은 색깔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붉은 등을 쓸까요?  

잠수함을 설계한 사람들은 죄다 아나코 리버럴이였을까요? (빨갱이)
설마요. 분명 이성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잠수함에서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도 가장 긴 파장대에 속하는 붉은 색을 사용하는 건
사람눈의 시감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말이 필요한가요? 일단 사진 한장 던지고 시작합시다.


사진에서 검은 선은 명소시(Photopic Vision) 시감특성을 나타낸 그래프이고,
초록 선은 암소시(Scotopic Vision) 시감특성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쉽게 말해 밝은 환경과 어두운 환경에서 사람 눈이 어느 파장대의 빛에 민감한지를 표현한 광도함수(Luminosity Function)의
그래프입니다.


일단 붉은 색은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600nm이상의 파장을 가지는 장파장대의 빛입니다.
그런데 이 붉은 색에 원추세포는 그래도 쉽게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반해서,
간상세포는 거의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상세포가 활동하는 암소시에는 붉은 색이 평상시보다 어두워 보입니다.
(이를 푸르키니에 현상,Purkinje Effect, 라고 부릅니다 )


그래서 붉은 등을 키면 원추세포는 자극을 받아서 사람이 물체를 식별하는데 도움을 주면서도,
간상세포는 거의 자극하지 않아 간상세포가 지금이 저조도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쉽게 말하면 눈을 기만하는 거죠.
(눈의 선택적 지각이랄까요....)
(그리고 우리의 불쌍한 간상세포는 로돕신을 합성하기 위해 X뺑이를 치게 되죠.
이때 비타민A가 부족하게 되면 이 로돕신의 합성이 힘들어져 야맹증이 생깁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잠수함의 지휘실처럼 적어도 계기판은 구분해야할 정도의 빛이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눈의 암순응이 필요한 경우 이런 긴 파장대의 붉은 빛이 사용됩니다.
(색채과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건 못해도 1900년대 부터이므로 과학의 승리라고 할수 있죠
그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데 사용됬다는건 참 슬픈 일이지만)











P.S. 잠수함 뿐일까요? 아닙니다. 이러한 붉은 빛의 특징은 여러 곳에서 사용됩니다.


터널속은 주황빛의 나트륨등으로 가득합니다. 위와 비슷한 이유로, 운전자들이 밝은 곳에서 갑자기 터널로 들어왔을때,
사물을 분간할정도의 조도를 제공하면서도 암순응에 유리한 긴 파장의 주황빛을 사용합니다.
(정확히는, 나르륨등은 약 590nm의 파장을 가지는 단색광을 내놓는데, 가시광선 스펙트럼상 주황색과 노랑색의 경계쯤에 위치해있습니다.
누런빛이 감도는 주황빛이란 표현이 정확하겠죠)
물론 미연에 방지하는게 더 중요하겠지만 혹시나 터널에 화재가 나거나, 정전이 되었을때 운전자의 눈이 암순응 되어 있지
않다면 큰 사고가 날 것입니다.
터널속에 안개가 꼈을경우에도, 파장이 긴 빛은 회절이 잘되어 더 구석구석 빛을 전달하는데에도 유리할뿐 아니라
명소시를 기준으로 측정해봤을때, 들어간 전기에너지에 비해 가장 효율적인 조명또한 나트륨등입니다.
여러모로 터널속 조명으로 쓰기에 이상적인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죠.



나안으로 별을 관측하는 천문활동을 할때도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붉은 고글을 쓰거나 후레쉬앞에 붉은 필터를 달아서
사용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입니다. 별지도를 본답시고 후레쉬를 켜서 명순응이 되면 곤란하니까요.
(위에서도 썻다시피 암순응에는 오래 걸리지만, 명순응은 정말 순식간입니다. 혹시라도 맨눈으로 천문 관측을 하실 분들은
꼭 유념하시길.....)




P.S. 붉은 빛은 아니지만 야간시현장비에서 녹색을 주로 쓰는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암순응이 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광량으로 눈을 최대한 자극하기에는 500nm근처 파장대의 녹색이 가장 좋거든요.
(그런데 브래들리의 열상은 왜 녹상이 아니라 적상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P.S. 가로등으로 나트륨등을 흔히 사용하는 것도 터널에서 나트륨등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 날벌레가 꼬이지 않는 다는 장점도 있다더군요. )
앞으로 밤에 길을 걷다가 주황빛의 가로등을 본다면 한번쯤은 이러한 눈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P.S. 눈은 아니지만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에서 적색등을 사용하는 것도, 필름의 감광유제가 가장 둔감한 파장대의 빛이라서
그렇습니다.